나는 참 늦복 터졌다

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자 :이은영 저 ,박덕성 구술, 김용택 편
  • 출판사 :푸른숲
  • 출판년 :2016-03-09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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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인이 보낼 수 있는

가장 풍성한 노년의 모습은 무엇일까?

섬진강 시인 김용택 가족이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일하는 노년이 건강하다》, 《100세 시대 신인류의 조건 2부작》(KBS 생로병사의 비밀), 《웰에이징 2부작》(SBS스페셜), 《노인들만 사는 마을》(MBC스페셜), 《100세 시대 행복할 권리》(MBC 다큐스페셜), 《100세 시대 나는 현역이다-한국편》(MBC 특집다큐멘터리)…….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노후대책’이다. 방송에서는 장르를 막론하고 ‘노년’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으며, 시청률 또한 뜨겁다. 100세 시대가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30대부터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돈, 친구, 취미활동, 건강과 같은 외적인 요인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식들 도움 없이 실버타운에서 편히 생활하면서 여행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풍족한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나이가 들어도 손주를 보거나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대다수 평범한 노인들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지’를 행복이 아닌 재앙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건강하지 않으면, 돈이 없으면, 친구나 배우자가 곁에 없으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없는 것일까?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아내 이은영 부부, 그리고 시인의 모친 박덕성 할머니가 함께 쓴 《나는 참 늦복 터졌다》는 ‘보통의 노인이 보낼 수 있는 가장 풍성한 노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행복한 노년’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책은 여든이 넘어 병원으로 보내진 박덕성 할머니가 아프다는 하소연, 억울하다는 한탄,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바느질을 시작하고 한글을 깨치며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된과정과 90년 인생을 살아오며 깨달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다. 또한 시인의 가족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효자, 효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노인 부양, 황혼 육아, 고독사, 치매, 독거노인까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노인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한다. 많은 사람들이 “폐지만 안 주워도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노후를 두렵고 불안하게 여기는 지금, 이 책의 출간이 우리 사회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저희가 할 테니 그냥 쉬세요” … ‘할 일’이 있는 노인이 행복한 이유



“평생 일하셨으니 이젠 쉬셨으면 좋겠어요”, “도시에서 저희가 편히 모시겠다는데 시골에 있겠다고 자꾸 고집을 피우세요”, “그 나이에 뭘 또 하세요? 그냥 편히 계시지…….”

나이 든 부모가 일을 못하도록 자식들이 만류하는 모습. 《인간극장》 같은 다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자식 입장에서는 평생 노동을 하면서 살아온 부모가 늙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이 속상할 수 있다. 하지만 병이 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노인을 위하는 방법인지, 이 책은 생각해보게 한다.



누워 있는 사람들은 밥 먹으라고 해야 일어난다.

어찌 저렇게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하는지 징허다.

바느질 글쓰기를 하니까 맘이 좋다.

한 가지 하면 또 한 가지 생각나고 해놓고 봉게 더 좋다.

어치게 니가 그렇게 생각을 잘해서 나를 풀어지게 해놨냐.

이것이 아니면 여름 진 놈의 해를 내가 어떻게 넘겼을지 모르것다.

_《바느질과 글쓰기》, p.87



젊은 시절에는 발이 땅에 닿을 새도 없이 훨훨 날아다니던 박덕성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며느리와 자녀들에게 원망과 하소연, 푸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할머니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은, 며느리의 권유로 바느질을 하면서부터다. 몸이 아파 병원으로 옮겨진 후 온종일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던 할머니가 밥보자기를 하나둘 만들게 되면서, 눈에서 빛이 나고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내가 왜 병원에 있냐”(p.74), “쉽게 죽도 안 하고,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살끄나. 방법이 없다”(p.67) 하던 할머니는 바느질을 통해 삶의 재미와 보람을 회복한다. 삐뚤빼뚤 초라하던 자수의 꽃잎과 줄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해지고 통통해진 것은,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늙고 쓸모없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자식들에게 줄 이불과 베갯잇을 만드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한 덕분이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녀 말고 며느리에게 줄 조각보도 만들어달라는 말에 “지랄한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지도 못하것다” 하며 기뻐한다(P.83~84). 할머니의 이러한 웃음과 변화를 통해 독자들은 노인들에게 돈과 건강 외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노년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꽃무늬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어머니 특유의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 만드신 물건들을 볼 때마다 식구들이나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바느질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어머니 눈빛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서 집 생각 말고, 자식들 생각 말고, 아프다는 생각 말고, 죽기를 기다리는 거 말고, 나만 기다리는 거 말고, 다른 생각과 고민을 하고 할 일이 생겨서 어머니의 모든 신경이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롤로그_ 이 나이에 뭘 못할까》, p.10~11





“그냐? 이게 시 같냐?” … 글쓰기, 자신감과 자존감을 넘어 인격을 회복하다



이은영 씨가 바느질을 통해 기력을 회복한 시어머니에게 선물한 또 다른 ‘할 일’은 글쓰기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가 단 몇 글자라도 직접 글을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당신의 일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20년 넘게 들어온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푸념이고 하소연이었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받아 적는 순간, 시어머니의 말과 인생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판소리가 되었다. 몇 십 년을 들어온 내용이라 다 안다고 흘려들었던, 지루한 옛날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한 자 한 자 글을 따라 쓰는 가운데 집안의 어른으로서 품격을 갖추어갔다.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을 녹음한 다음 집에 와서, 다시 어머니 말씀 그대로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어머니 말씀은 시였다. 어머니 말씀은 다 노래였고 판소리였고 소설이었다. 예전에 들을 때는 몰랐다. 똑같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어머니 이야기의 앞 대목만 들어도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니 어머니 이야기가 새롭게 들렸다. 이제야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건가 싶었다.

지난 명절에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어머니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비로소 자식들로부터 독립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대학원을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엘리트 어머니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공부가 인격이 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서 배운다며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냥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서 잃었던 자존감을,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회복하고 계셨다. 놀라웠다.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채감에서 벗어났다. 《프롤로그_ 이 나이에 뭘 못할까》, p.14~15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할머니는 더 이상 자식들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이 자식 붙들고 신세 한탄, 저 자식 붙들고 신세 한탄하며 나 좀 봐달라고, 너희들이 나한테 왜 이러냐고, 제발 나 좀 봐달라고 매달리는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 매사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자식들에게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꼬장꼬장한 노인의 모습이, 글을 읽고 쓰는 사이에 어느새 사라진 것이다. 할머니는 이런 자신의 삶을 두고 “늦복이 터졌다”고 했고, 김용택 시인은 “결혼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박덕성 할머니에게 찾아온 이러한 변화는 한 개인, 한 가정의 일이기도 하지만 노인을 무기력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짐으로 여기는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 일만 하다가 퇴직한 이들이 우울감이나 무기력함을 호소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가치 없는 존재’, ‘잉여인간’, ‘쓸모없어진 부품’으로 여기게 된 탓도 크다.

정년퇴직한 교수, 대기업 임원, 고위공직자 들이 봉사활동, 재능기부 등을 하거나 전 직장에 비해 턱없이 낮은 근무조건에도 새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생활비를 벌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 후반부를 단순히 ‘상류층의 귀족 취미생활’쯤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인생을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왜 자식은 무조건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가?” … 진정한 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왜 자식이 무조건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가?”, “왜 시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딸인 며느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는가?”

불효자식 혹은 버릇없는 며느리라고 욕을 먹기에 딱 좋은 이러한 주장은, 김용택 시인이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 중 하나다.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식이 반드시 부모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어머니는 혼자 사는 게 맞고, 내 아내는 나와 함께 사는 것이 맞다”는 시인의 주장은, 혼자된 부모를 자식들이 직접 챙겨야 하고, 나이 든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불효라 여기는 우리의 효 사상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지 반문하게 만든다.

실제로 시인은 2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면 안 되고, 알아도 소용없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살았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당사자들끼리 직접 해결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지금처럼 수직적이기만 하다면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의 주장이다.



“동네 사람들이 그러는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도 민세 에미 너만큼은 내가 늙어도 나한테 안 그럴 거라고 그러는데 니가 어쩔랑가 모르것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제가 잘하지 누가 잘하겠어요.”

가끔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늙어봐야지.”

가끔은 이렇게도 대답했다. “사람 일을 어찌 알겠어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

가끔은 뒷문으로 도망쳤다. 듣기 싫었다. 내가 왜 일방적으로 어머니에게 잘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시집을 와서 큰며느리로 산다는 건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어머니하고 사는 동안 언제나 준비해둔 말이 있다. 이 집 형제들이나 시누 남편 중 누구라도 나한테 “우리 엄마한테 왜 그랬어?” 그러면 나는 당장 “그래? 그럼 네가 해. 네가 한번 해봐. 네가 한번 어머니하고 살아봐” 하고는 배턴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집 식구 어느 누구도 내게 아직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농사》, P.129





하루하루를 복 터지게 사는 가장 중요한 조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재미있게’ 하라



사람들은 누구나 ‘멋진 노인’이 되고 싶어 한다. 자기 방식만 강요하는, 했던 얘기만 계속 하는, 고집불통 늙은이가 아닌 성숙하고 지혜로우며 여유와 품위를 지인 노인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노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나이 들수록 사라지는 것, 나빠지는 것, 잃어버리는 것, 놓아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집착하느라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택 시인은 “현재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 든 뒤에 무엇으로 기쁨을 얻을 것인가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 먹을수록 늙고 병들고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나이 듦의 전부이지만, 나이 들어서 더 좋아지는 것,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는 것,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인생 후반부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쓴 이근후 교수는 나이 들어 발견한 재미 덕분에 거의 날마다 강의를 듣고, 심리 상담을 하고,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고, 글을 쓰고, 차를 즐기며 노년의 여유로운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지’ 찾는 것이다. 밥벌이를 위한 일 말고, 자체로 내가 즐거운 일. 물론 이 두 가지가 같다면 더없이 완벽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지 않아도 해야 한다면, 그 일을 그만두었을 때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나이 든 후에 시작한다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90세가 다 된 나이에 한글을 깨치고 수를 놓으며 건강과 생기를 회복한 박덕성 할머니과 김용택 부부의 인생은, 그래서 노후준비를 한답시고 돈 모으기에만 급급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돈, 건강, 친구, 배우자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독자들은 《나는 참 늦복 터졌다》를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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