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신과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

  • 자 :김지용
  • 출판사 :심심
  • 출판년 :2020-08-27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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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팟캐스트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여기, 두 조현병 환자가 있다. 둘은 비슷한 시기 동일한 병동에 한 달간 입원해 있었다. 주치의도 같았다. 천둥 번개가 치던 날, 크게 웃으며 자신이 내린 것이라 주장하던 A는 이후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지금은 단 한 차례의 재발도 없이 명문대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그에 반해 B는 여전히 본인의 SNS에 해석하기 어려운, 망상이 가득한 글을 올리고 있다.

같은 병을 앓더라도 환자에 따라 질병 경과는 다를 수 있다. 모든 질병이 그러하고,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의사에게서 비슷한 기간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차이를, 그저 당연한 일로만 볼 수 있을까? 이 차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활 습관? 유전자 차이? 아니면 타고난 운명일까?

현대 의학은 지속적인 연구로 질병의 예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해왔다. 발병 연령, 가족력 여부 등은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실제로 정신 질환은 어린 나이에 발병할수록, 가족력이 많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그러나 타고난 것이 전부는 아니며 당연하게도, 발병 이후 대처 방안에 따라 예후가 다르다.

조현병의 예후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인자로 DUP(Duration of Untreated Period: 조현병 발병 후 치료까지 걸리는 기간)가 있다. DUP가 짧을수록 예후가 좋으며, WHO에서는 12주 이내 치료를 권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DUP는 평균 56주로 권장보다 한참 길다. 조현병은 여느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뇌의 질환’이다. 따라서 치료 시작이 늦어질수록, 뇌 손상은 깊어진다. 손상이 많이 된 뇌는 약물치료로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대부분 암을 조기에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암을 발견했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받아 완치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암만큼 위험한 질환, 조현병의 DUP는 왜 이렇게 길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정신 질환과 정신과를 향한 오해와 편견에 있다.

《어쩌다 정신과 의사(심심 刊)》는 세상에 만연하게 굳어진 정신과에 대한 오해, 정신 질환을 향한 편견을 깨뜨리려 애쓰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분투기다. 책을 쓴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전문의는 앞서 등장한 A와 B의 담당의였다. 그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취업에 불리하다, 보험 가입도 안 된다’, ‘정신과 약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기고 바보된다’, ‘정신 질환은 마음의 병이므로 마음만 굳게 먹으면 회복될 수 있다’ 같은 흔하디흔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정신과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질리게 목격했다. 그리고 설사 그 어려운 문턱을 넘었더라도 B의 사례처럼 과도한 염려와 공포심 때문에 약물치료를 중단해 재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와 전공의 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들도 비슷한 일을 수없이 겪었고, 함께 한탄했다.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이 한탄에서 시작됐다.



나는 정신과의 문턱이 지금보다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더 낮아져야만 한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다 병이 악화되어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다.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치료가 필요한 이들의 발길을 가로막는 현실을 질리게 목격했다. 그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해, 정신과와 정신 질환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지난 몇 년간 〈뇌부자들〉을 만들어왔다. -12쪽

“의대에 간 지 4년 만에 드디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두 번 유급당한 한량 의대생은 어쩌다 열혈 정신과 의사가 되었나

2017년 3월 18일, 〈뇌부자들〉의 첫 방송이 업로드됐다. 레지던트를 막 마친 정신과 의사 여섯 명이 직접 대본을 쓰고 녹음해 편집한, 한 땀 한 땀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방송이었다.

시작하면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의사 사회에서 안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을까?’,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익명성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팟캐스트라는 도구를 선택했다. 전문 의학 지식을 다루는 채널을 목표로 했기에 오류가 없어야 했고, 혹시 청취자 마음에 상처 줄 실언을 ‘편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기대는 없었다. ‘유명인도 아닌 우리 목소리에 누가 관심을 가지기는 할까?’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첫 방송 후 한 달 남짓, 아이튠즈 전체 차트 2위로 올라선 것이다. 때는 각종 시사 팟캐스트가 1, 2위를 다투는 팟캐스트 전성시대였다.(276쪽)

《어쩌다 정신과 의사》는 〈뇌부자들〉을 탄생시킨 김지용의 첫 단독 저서다. 그는 그동안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미처 꺼내놓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를 책에 털어놓았다. 그동안 많은 정신과 의사가 책을 냈고, 다양한 매체에서 정신과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분명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도 굳건히 남아 있는 정신과의 ‘높은’ 문턱을 더 낮추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기존 정신과 의사의 책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 풍경을 관찰자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삶의 문제에 해답을 주는 ‘산꼭대기의 현자’ 같은 자세를 취했다면, 이 책에는 ‘정신과 내부자들만 아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인간 김지용’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나는 정신과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는, 어쩌면 당신의 기대를 배반할지도 모른다. 삶의 나락에 빠진 누군가를 척척 구원해내고, 마음의 모든 문제에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산꼭대기의 현자’ 같은 정신과 의사는 이 책에 없다.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동료들은 다른 모든 이처럼 자기 인생의 산길을 오르다 헤매기도 하는 사람이다. 대신 정신과 의사는 그렇게 헤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또 꾸준히 공부한다. 정신과 의사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인생의 방향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길을 함께 고민하며 찾는 가이드다. 그렇게 가이드로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 그때 느낀 감정들을 이 책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13쪽



1장에는 공부는 곧잘 했으나 뭘 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청년이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되기까지 겪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고고학자였다. 그러나 “과거를 파헤치기보다 현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역사학자 아버지의 ‘납득 불가능한’ 설득에 저항하다가 결국 이과로 선회, 수능 한 방으로 의대에 간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는 ‘의대는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며 게임과 농구에만 몰두하다가 두 번 유급을 당한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당했으니 이제라도 알아서 정신을 차리면 좋았으련만, 다시 ‘그때 의대를 써보라고 했던’ 부모님을 원망한다. 그만두고 전과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선선히 그만두라고 한 것. 구석에 몰리자 그는 의대에 남기로 결정한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패배자가 되기도, 그리고 ‘명문대 의대생’ 타이틀을 내려놓기도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더 이상 누구도 탓할 수 없어지자, 갈등은 줄었다. 그렇게 그는 4년 만에 드디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33쪽)





정신과 ‘내부자’ 김지용이 피 땀 눈물로 엮은

슬기로운 정신과 생활

웬만한 고통 배틀에서 이길 만한 인턴 시절 이야기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면들이 겹겹이 펼쳐지는 듯하다. 매일 1시간씩 자며 일하던 기간. 당연히 퇴근은 없다. 좀비처럼 병원을 걸어 다니며 어디서든 바로 잠들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끊임없이 콜이 울렸다. 2층 침대가 열 개 정도 놓여 있는 인턴 방에서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같이 살았는데, 자다가 콜을 받고 돌아온 사이 누군가에게 잠자리를 뺏기는 일이 흔했다.(44쪽) 어느 날 밤에는, 먹을지 말지 고민하다 잠든 테이블 위 치킨 상자의 정체가 사실은 각 티슈였음을 다음 날 아침 깨달은 일도 있었다.(47쪽)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한 이유, 정신과 의사가 뇌 이외의 장기를 공부하고, 힘든 학업과 노동을 해야 했던 이유를 ‘정신과 의사가 정신 질환에 관해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정신과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의학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51쪽)

인턴을 지나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는 과정은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라 흥미롭다. “10명의 정신과 전문의와 1명의 면접자가 만나서 권투 스파링을 벌이는 느낌”이라고 일컬은 정신과 레지던트 면접 풍경은 읽는 사람마저 손에 땀을 쥐게 한다.(57쪽) 사람의 성격이,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어기제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정신과 의사들이기에, 면접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정신과 레지던트로 합격할 가능성이 높을까?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선발 기준이다. 자기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어 산 속 폐쇄병동에서 입원 환자를 돌본 장면으로 이어진다. 1년차 정신과 전공의는 주로 조현병과 조울증 환자를 담당한다. 우울증, 강박증, 중독, 치매, 성격장애 등은 연차가 높은 전공의가 돼서야 맡는다. 다소 ‘무거운’ 질환을 먼저 담당한다니 언 뜻 이해가 안 가지만, 이유가 있다. 조현병과 조울증은 가장 전형적인 정신 병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정신의학의 학문적 입구로서 역할을 하는데다, 상담보다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질환이다. 즉, 약물로 정신 질환을 다스릴 수 있음을 똑똑히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65쪽) 실제로 저자는 이 두 질환을 통해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확인한다. 약물치료를 통해 망상, 환청 등 주요 증상이 사라지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경험한 것이다.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공유하지만

결코 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환자와 치료자에 대해서

2장은 멀고도 가까운,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를 다룬다. 정신과 의사(치료자)와 환자 또는 내담자의 관계는 굉장히 독특하다. 내담자는 치료자에게 가족에게도 하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치료는 꽤 오랜 기간 유지되고, 내담자는 정기적으로 치료자를 찾는다. 그렇다 보니, 서로를 길들이는 그 과정 속에서 내담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치료자에게 ‘인간적인 호감’ 또는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환자와 치료자, 둘 사이는 결코 일상에서는 연결될 수 없다. “친구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책에는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가 지닌 특수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124쪽) 치료자 입장에서 환자 또는 내담자와 ‘사람 대 사람’으로 여러 감정이 오간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가장 흔한 것은 ‘더 친해지고 싶다’는 감정. 내담자는 치료자에게 밖에서 따로 만나 밥을 먹을 수는 없는지, 치료가 종결된 후에는 만나도 되는 것 아닌지, 아주 잠깐만 격려나 위로의 의미로 안아주면 안 되는지 등을 묻는다. 이럴 때는 저자는 치료자와 환자가 사적인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는 치료 원칙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조심스럽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저자는 물론 치료자라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수개월 또는 몇 년째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었는지, 은밀한 기억과 숨기고픈 생각뿐 아니라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시시콜콜 아는 관계가 자신에게도 단연코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픈 사람도, 친구와 소개팅을 해주고픈 사람도, 너무 안타깝거나 기특해서 등을 두드려주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저자는 이 모든 생각을 아주 잠깐의 생각으로만 끝낸다. 치료자의 과도한 책임감, 역할을 넘어선 행동은 결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삶을 살아나가는 데 훼방을 놓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치료자가 ‘정해진 선’을 지켜야 현실에서, 일상에서 내담자가 성장할 수 있다고 분명히 강조한다.(129쪽)

책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만한 대목은,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 헤어지는 순간을 다룬 장면이다.(130쪽) 처음 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진 내담자의 모습을 보고 차오르는 뿌듯함과 감동도 잠시. ‘이제 그냥 가면 되느냐, 이게 끝이냐’고 묻는 내담자의 얼굴을 보면 저자도 뭔가 부족하고 어색하다. 깊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복잡한 감정을 가리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네, 가시면 됩니다.”

저자는 말한다. “나도 꽤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원래 이런 자리다. 참 특수한 관계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운하리만큼, 가끔은 서글프리만큼 먼 사이.” 저자는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래서 이 글을 썼나 보다고 덧붙인다.



“나는 100점짜리 아빠 대신, 70점짜리 아빠가 되기로 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에 관하여

3장에서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또는 내담자 들과 치료 과정에서, 또 상담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저자는 진료실을 찾는 사람 대부분의 상처가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그럼에도 ‘결국에는 사람’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많은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그리고 ‘엄마’ 또는 ‘아빠’ 때문에, ‘친구’ 때문에, ‘동료’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사람’ 자체에 환멸을 느껴 관계를 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한 사람, 완벽한 관계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완벽한 사람, 완벽한 관계는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인생에 꽤 괜찮은 사람이 주변에 분명히 있었음에도 ‘완벽하지 않기에’ 관계를 끊어왔다는 저자의 지적은 뼈아프다.(171쪽)

4장에는 두 아이의 아빠로 ‘완벽한 육아’를 꿈꾸다 허리디스크가 터져버린 사건이 나온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생애 초기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체감한 저자는, 배운 그대로 키우기 위해 ‘100점짜리 육아’를 꿈꿨다.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일관되게 반응하기.’ 일단 민감성 면에서는 탈락이었다. 좋은 부모는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고파서인지, 쉬가 마려서인지, 아니면 졸려서인지 알아챈다는데, 저자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로 메우려 했다. 울 때마다 즉각적으로 안아 달래주었고, 덕분인지 아이는 밝게 자랐다. 그렇게 2년을 보낸 어느 날, 출근을 하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져버렸다.(216쪽) 저자는 이제 ‘70점짜리 아빠’를 목표로 삼는다. 항상 웃으며 안아주던 아빠가 ‘100점’이었다면, 요양을 하느라 며칠간 떨어져 있던 아빠는 ‘0점’이었다는 것. 그 이후 저자는 완벽한 부모가 아닌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는 편을 택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개념은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칭찬 일기’와 ‘감사 일기’를 써보라고 권한다.(231쪽) 저자는 내담자들에게 하루 세 가지씩 자기를 칭찬하는 글을 써오라는 칭찬 일기 숙제를 내주곤 하는데, 몇 시간을 고민해도 한 줄을 써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느 누구에나 하루 세 가지씩은 반드시 칭찬할 일이 있다고 강조한다. 밥을 챙겨 먹은 것, 회사에 출근한 것,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온 것 자체도 칭찬할 거리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내담자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칭찬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되묻는다. 그것이 왜 당연한지도 모르겠고, 설사 당연한 일을 했다고 쳐도 그 “당연히 한 일에 대해서는 왜 칭찬을 받으면 안 되느냐”고.(235쪽)



“정신과 의사가 된 그날부터 자주 화가 났다”

정신과 진료를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책

저자가 진료실에서 본업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부족한 시간을 쪼개 〈뇌부자들〉 활동을 3년째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화가 나서’다. 무엇에 화가 나는 걸까. 저자는 조기에 치료하면 충분히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수많은 사람을 가로막는 정신과, 정신 질환에 관한 오해와 편견에 자주 화가 났다.

마지막 장에는 그 편견을 깨뜨리려는 저자의 노력과 생각이 담겨 있다. 앞서 등장한 A와 B의 예후 차이에는 사실 정신과 ‘약’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숨은 역할을 했다. A의 가족은 약물치료와 가족 상담을 충실히 받았던 데 반해, B의 가족은 ‘언제 이 무서운 약을 끊을 수 있을지’에만 몰두했다. 정신과 약을 ‘빨리 끊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작용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저자는 정신과 약이 만능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부작용을 인정하고, 정신의학을 비롯한 현대 의학이 아직 풀지 못한 숙제와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작용’은 정신과 약뿐 아니라 어느 약에나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항암제에 여러 부작용이 있어도, 치료 성공률이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항암제는 위험하니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유독 정신과 약의 부작용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항암제처럼, 정신 질환에서 약물치료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필수 항목’이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저자는 꿈꾼다. ‘몇 년 전만해도 아무렇지 않게 했던 발언이 오늘날에는 성차별적 발언, 꼰대적 발언으로 취급받듯, 정신 질환에 관해서도 그렇게 더 나은 인식이 자리 잡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정신과와 정신 질환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우린 정상이에요!’라고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그 목소리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시대에 뒤떨어진, 비과학적인,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의 발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꿈만 같은 이야기일까? 5년, 10년 뒤에는 분명 많은 것이 바뀌어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 책 또한 그 변화에 기여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326쪽



이 책은 그동안 정신과 의사가 쓴 책 중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우리는 정신과 의사가 ‘인간’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인간’일 수 있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히 마음이 힘들거나 고통스러울 때 치료를 해주는 사람, 삶의 여러 문제에 해답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이 책에는 그렇게 생각해온 것이 미안하고 무색할 정도로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정신과 의사가 등장한다.

왜 이렇게까지 솔직해야 했을까? 의사의 ‘권위’가 치료에 도움이 되는 요소라는 불문율도 있는데, 왜 자기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기로 했을까? 이 책을 먼저 읽은 작가 서늘한여름밤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진료실 안,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도 나와 비슷한,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정신과 진료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문턱을 낮추는 트리거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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