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시인과 과부 엄마가 뭉쳤다.
모녀가 투닥투닥 함께 넘어가는 삶의 고개.
“그려, 이년아! 나는 그 잘난 작가년 어미라서 잘 갖다가 붙인다. 왜? 뭐?”
시집 《벚꽃 문신》을 통해 농촌 인물들의 서사를 질박하면서도 감동스럽게 표현해 주목을 받았던 시인 박경희가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를 펴냈다. 과부가 된 엄마와 이제는 노처녀가 되어 버린 시인이 옥닥복닥 살아가는 일상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충청도 사투리만큼 구수하고 걸쭉하다. 산문집 제목 역시 과부 엄마가 노처녀 딸에게 던진 한마디.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는 일단 재미가 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가차 없이 뱉어 내는 과부 엄마의 욕은 그야말로 촌철살인. 책을 읽기 시작하는 독자의 마음 경계를 단숨에 해제하여 웃음 짓게 만든다. 그 욕이 상스럽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박경희의 능청스럽고 생생한 입담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가 창문을 때리다 못해 개 패듯이 내리’치는 저녁에 ‘잠시 화투의 거룩한 세계에 빠져 본다며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가 ‘맞고의 위엄한 세계’를 향해 토해 내는 “아따, 징그럽게 싸네. 왜 기냥 싸는 겨. 지랄, 똥도 아니고.” 같은 욕은 어떤가. 너무 오래 써먹어서 더 이상 자기한테 먹히지 않는다며 욕을 바꿔 보라는 딸의 말에 “아이고, 사랑받을 년아, 부자 될 년아, 행복해서 뒤집어질 년아”라고 툭 던지는 엄마는 또 어떻고.
시인은 알고 있다. ‘울 엄니 욕은 사랑인 것을’. 하여 ‘엄니의 거침없는 욕 장단에 추임새만 넣을 뿐’이다. 사실 과부 엄마는 ‘도리와 예의를 상당히 중요시하는 분’이다. ‘단지 나이 마흔에 시집 안 간 딸년이라는 애물단지와 컴퓨터에만’ 욕을 한다.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에서 욕은 과부 엄마와 노처녀 딸 사이, 혹은 등장인물 간에 형성되어 있는 단단한 애착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면서 책의 재미를 상당 부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육두문자를 넘어 ‘대가리에 충만하게 든 것들은 자랑질을 일삼는다’, ‘나이 처먹을 만큼 먹었으면 도리라는 것을 해야지’, ‘쎄 빠지게 쓰믄 읽는 사람도 쎄 빠져’ 같은 말은 재미만이 아니라 신산스러운 세월을 오랫동안 겪으며 체화한 풍자와 비유가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너 읎었으면 지금 이렇게 웃기나 했을까 모르겄다.
아비 몫까지 하느라 욕보는디, 아가, 고맙다.”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에 단지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사부곡(思父曲), 극진한 사랑을 보여 줬던 지아비를 향한 그리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는 모녀의 애정, 거칠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시골 사람들의 일상 등이 박경희 특유의 경쾌하면서 감성 어린 문장으로 표현되어 감동을 준다.
“이 냥반이 땅을 얼매나 사랑했는디…….”
몸이 약해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나와 보지 않던 밭에 나가 힘들게 일하는 엄마. 반나절 일하고 사흘 앓아눕는 엄마가 걱정되어 잔소리를 늘어놓는 딸. 그런 딸에게 지청구를 내뱉고 혼자 중얼거리는 엄마. 딸은 결국 ‘가는 봄날에 소소한 엄니의 그리움’이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내밀한 개인사를 고백하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막막함에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에 참여한다. 순례 후 절에 들어간 작가. 그렇게 절에서 4년을 보내게 되고, ‘그 사이 엄니는 머리는 깎지 말라고,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냐며 내리 피는 백일홍처럼 내 앞에서 한들거렸다’고 한다. 엄마를 보며 작가는 ‘산벚꽃 흐드러지게 핀 고갯길에서 목 놓아 울었다. 엄니가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추천 글을 쓴 시인 유용주는 4월 참사 이후 무참한 시절을 지내 오며 한동안 웃음을 잃었다가《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을 읽고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고 한다. 푸짐한 해학과 함께 진한 감동을 얻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아울러 책의 마지막 편인 〈세월〉을 읽으며 ‘그날’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