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오늘의 삶은 일기가 되고, 그 일기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일기에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하지만 찬란했던 역사의 참 주인공들이 써 내려간 알짜배기 역사책을 만나다!!
역사 덕후 청년 박영서의 두 번째 책. 전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 이어 이번에는 조선 사람들의 ‘일기’에 주목했다. 일기는 가장 사적인 기록이다. 개인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세세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달을 보며 자리에 들 때까지 시시각각 스쳐 지나간 온갖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흔적들이 조용히 내려앉으면 일기가 된다. 그러나 일기는 거시적이기도 하다. 일기를 쓴 사람이 자신이 살아 숨 쉬던 시대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일기는 개인이라는 씨실과 시대라는 날실이 직조된 저마다의 직조물인 셈이다. 똑같은 일기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원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활약을 읽는 일은 『난중일기(亂中日記)』 덕분에 가능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투를 이해하게 된 데에는 김구의 『백범일지(白凡逸志)』 역할이 크다. 『안네의 일기』 덕분에 우리는 유태인 소녀 안네가 겪었던 나치 치하의 참혹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고, ‘일기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 『아미엘의 일기』는 매일매일 행해지는 내면의 성찰과 명상이 어떻게 격조 높은 문학으로 탄생하는지 보여준다. 이 모두 일기가 개인의 사유와 행동 및 희망과 절망을 담아내며, 동시에 후대 사람들에게 한 시대의 영광과 추락을 전해준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사람들이 쓴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그들은 왜 글을 썼을까? 글은 양반의 전유물이었으니 일반 백성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조선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시대를 통찰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시대정신을 기록하기 위해, 후대에 남길 정신적인 유산을 축적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높으신 양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목숨 걸었던 마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내미가 긴 병치레에 들어가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 백성은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정력제를 구해오라 다그치는 양반네를 고급스러운 유머로 받아치는 마음, 근성 있는 대탈주를 감행한 조선 노비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아이고 내 재산!’을 되뇌는 주인님의 분통 어린 심정……. 양반들의 속사정은 물론 함께 호흡하던 일반 백성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모두 담아낸 이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다채로운 빛으로 채워준다. 저자 박영서가 『난중일기』나 『열하일기(熱河日記)』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선정한 덕분이다.
가히 조선 사람들의 ‘이불킥’ 총집합이라 할 만한, 웃기고도 슬픈 조선 사람의 속마음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조선의 하루를 읽어보자. 특히 이번 책에는 독서의 재미를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주요 등장인물의 캐리커처와 저자가 직접 쓴 한문일기 필사본이 실려 있다. 다른 책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자료만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선택은 행운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한국사에 재미를 붙이고 싶은 학생들, 읽을거리를 찾아 온오프라인 서점을 방황하는 독서가들, 그리고 ‘역사라면 한국사! 한국사라면 미시사!’를 외치는 역사 마니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평범하지만 찬란했던 그들의 삶, 시시콜콜 쌓인 우리 민족의 역사!
이 책에 소개된 자료들은 모두 전문 연구자들과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시대 개인일기 학술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의 개인 일기들은 무려 1431건에 이른다. 여행 중에 쓴 여행일기, 전쟁 중에 쓴 전란일기, 궁중의 여인들이 쓴 궁중일기, 단맛 짠맛 다 드러나는 생활일기, 공무를 수행하던 중에 쓴 사행일기 등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몇 세대가 이어 쓴 일기들이 있다. 우리는 그 수많은 기록자료 덕분에 21세기 책상에 앉아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웃을 수 있고, 때로는 슬픈 영화를 볼 때처럼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기록에 푹 빠져 일기의 주인들과 완전히 공명할 수 있다. E.H 카의 말처럼 “과거의 조선인들과 현재의 우리가 대화하는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남긴 선조들과 소통하며, 이제 또 다른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렇게 읽자
이 책은 ‘공명 유도서’다. 저자가 “책을 엮을 때 독자들이 일기 속 주인공과 충분히 공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미리 밝힌 이유다. 일기의 주인공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생활상과 시대를 마주할 때 비로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온몸으로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회고나 복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재의 순간을 사는 우리 자신 역시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임을 깨닫는 데서 증폭한다. 저자가 원문 및 번역문을 쉽게 접하실 수 있는 생활일기들을 주로 선정한 것도 이 같은 매락에서다. 시시콜콜한 일상 속의 사건 중심으로 각 장을 꾸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삶을 조망하기 위해 노력한 이 책을 통해 보통의 삶 따위 가뿐히 뛰어넘은 인생 선배들의 삶을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