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 자 :법인
  • 출판사 :불광출판사
  • 출판년 :2015-03-25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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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보다 사색! 사유의 힘을 회복하라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힘’에 달렸다




생각이 강물처럼 흐르고 넘치는 시대이다. 인터넷, SNS, 온갖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을 만난다. 생각의 물결에는 자본과 권력, 종교 등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교묘하게 포장된 생각들이 떠다닌다. 생각의 물결 속에서 우리 삶의 가치관과 방향, 태도들은 바뀌고 변해간다. 그렇다면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은 과연 내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가리키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또, 누군가는 삶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 ‘생각을 버리자!’, ‘생각’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은 걸까. 문제는 진정한 행복과 성숙의 삶으로 이끄는 ‘진짜 생각’의 길을 잃어버린 데 있다. 그래서 헤매고 고민하는 습관적 우울감에 빠져 있을 뿐이다.



다독가, 따듯한 직설가, 공부하는 스님으로 통하는 법인 스님은 이 책에서 ‘검색’으로 상징되는, 경직되고 고착된 생각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내 머릿속 ‘사유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한다.





스님은 사유의 전문가,

법인 스님이 들려주는 사思생활




‘스님’은 사유의 전문가다. 수행자로서 모든 일상이 사유와 공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법인 스님은 그 속에서 체득한 사유의 열매를 세상과 나눠 왔다. 세상의 고민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따뜻한 처방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병’ 주고 ‘약’ 주는 스님으로 통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스님은 자신의 ‘사思 생활’을 들려주며, 늘 생각하고 성찰하여 ‘헛것’에 홀려 살지 말 것을 ‘직설’과 ‘공감’으로 권유한다. 밖으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아닌 내적인 성찰로 깨어 마음을 돌보라고 한다. 사유, 사색, 성찰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생존의 무기임을 강조한다. 스님은 말한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나(붓다)의 말도 의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유하며,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유태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과거를 조사했더니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엄청난 죄를 저질렀을까요. 바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사유하지 않은 죄’를 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다양하게 생각하세요, 낯설게 생각하세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버리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봐야 합니다.“





헛것에 홀리지 않기 위한,

법인 스님의 사思생활 비법 10




1 행복하고 좋아 보이는 것, 모두가 동의한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뒤집어보라.

2 삶의 변화는 익숙함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한다.

3 위로 받기 전에 냉엄하게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해 보라.

4 모호하게 말하지 말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라.

5 나의 말도 의심하고 한 번 더 헤아려 보라.

6 만족과 감사의 기도만이 나의 최선인가?

7 이미지와 감성에 속지 마라.

8 물어라. 묻지 않으면 길은 열리지 않는다.

9 생각 그리고 사랑, 연습하면 무르익는다.

10 해탈과 천국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올바른 깨달음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엔진이다




법인 스님의 논조는 합리적인 의심과 정직한 성찰로 모아진다. 우선, 지금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성찰해 보라고 한다. 행복의 조건, 사랑의 기준, 성공의 개념……. 우리 삶이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이런 첫 단추, ‘조건과 기준,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속도와 성장을 목표로 개인을 도구화하고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국가권력과 기업, 학교 등 사회 구조도 개인의 불행에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사회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방향타가 사회의 요구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에 대한 냉엄한 진단도 스스로 진단해 보라고 한다. “내 삶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는가? 나는 지금 남의 삶을 눈치 보며 흉내 내고 있지 않은가”고.



한 사람의 변화된 생각은 한 사회를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올바른 깨달음은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다양한 낯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이끌며, 개인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성찰하도록 한다. 나아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길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즉, 인생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획기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올바른 깨달음(성찰)이 인생을 획기적으로 변하도록 한다. 올바른 반성과 성찰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나아가 공존을 위한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요 내용



1장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인간은 생각하고 살 때 주체적으로 살 수 있고, 생각하며 살아야만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SNS나 온갖 인터넷 매체가 발달한 현대사회는 검색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점점 자기만의 생각법을 잃어간다. 검색을 단순히 정보의 유용성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이 아는 시대에 적게 생각하고, 많이 아는 시대에 사고가 협소해지는 이른바, ‘검색의 시대’, 사유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소통 매체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오히려 다양한 소통방식 속에서 오히려 불통하고 있는 생각이 듭니다. 불통의 원인들은 내가 접한 정보와 지식을 내면화하여 자기 삶을 성찰하고, 다시 사회를 넓혀 성찰하는 그런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내 삶을 유용하게만 하는 지식으로서만 치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생각과 생각을 나누고 감정과 감정을 나누어야 되는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2장 쉽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라

올바른 사유와 성찰은 행동과 실천으로 이끈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다. 변화, 거부, 다시 시작하는 삶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스님은 안도현의 『연어』,『비노바 바베』평전, 『김예슬 선언』의 독후감을 들려준다.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화려한 삶을 버리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아간 비노바 바베에게서 삶의 가치를 묻는다. 또 대학을 거부하면서 수동적 삶과의 안녕을 고한 대학생 김예슬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출가’라고 하는가. 출가는 살던 집을 버리고 떠나는 결행을 말한다. 어떤 집에서 나와야 하는가. 속박과 갈등의 집, 다툼과 상처가 가득한 집, 소수의 강자가 다수를 억압하고 군림하는 집, 돈의 가치가 생명의 가치에 우선하는 집,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에 묶여 있으면서도 묶여 있는 줄을 모르고 알면서도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찾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이런 집에서는 불안하고 답답하고 생기 없는 삶이 있을 뿐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집을 떠나는 것만을 출가라고 할 수 없다. 헛된 꿈을 꾸며 이기적 욕망이 질주하는 트랙의 출발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3장 아름다운 만남은 어떻게 오는가

삶은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이 일어나고 흘러간다. 세상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는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나의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며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있지 않으며 한 개인의 문제는 한 사회의 문제로 봐야 옳다. 이 장에서 스님은 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남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 길은 세상에 대한 연민과 자애에서 시작한다.



“엄정하면서도 친근할 수 있고, 침묵하면서도 귀 기울일 수 있으며, 여럿이 함께할 수 있으면서도 홀로 있을 수 있고, 비우면서도 나눌 수 있음에도 왜 우리는 한쪽으로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았을까. 눈은 뜨면 안팎 모두를 볼 수 있고, 귀는 열면 안팎 모두를 들을 수 있는데, 왜 눈과 귀를 반쯤만 열고 살았을까. 결국 이것은 세상에 대한 연민과 자애의 부재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더불어 존재하고 더불어 생동한다는 연기의 질서에 철저하지 못한 소치이다.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헌신과 자비를 실현한 부처님의 삶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이고 게으름이리라.”



4장 스님의 반성문

종교만큼 인간의 생각을 가장 확실하게, 무섭게 지배하는 것도 없다. 종교에 대한 그릇된 믿음은 개인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삶을 위험에 빠트린다. 이 장은 성직자로서, 세속화된 종교에 대한 반성문을 모았다. 더불어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며 우리에게 묻는다. 비현실적인 공상을 ?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범속한 삶은 무의미하다며 깨달음에만 매달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나아가 진정한 믿음과 수행, 해탈과 천국에 이르는 것은‘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해탈과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깨어 있는 사유와 성찰로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또 ‘깨달음(지혜)이 먼저인가, 자비(사랑)가 먼저인가’라는 물음에 새는 양 날개로 날아간다는 비유, 가톨릭의 성 프란치스코 기도문을 반야심경으로 치환하여 모든 종교의 목적이 자비(사랑)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중생’과 ‘어린 양’을 태우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과속으로 충돌과 위험 속에 차를 몰고 있는 종교인이여, 이제 그만 차에서 내리시라. 선교와 호교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시민의식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를 흔드는 이런 선교와 호교를 과연 부처님과 예수님이 바라실까. 종교는 삶에 지친 사람들의 위로처이다. 힘없는 사람들의 의지처이다. 종교는 아무 힘이 없음으로 하여 가장 특별한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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