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 자 :위화
  • 출판사 :푸른숲
  • 출판년 :2018-11-20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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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 선정 96년 최고의 소설

〈중화독서보〉 집계 96, 97, 98년 연속 베스트셀러!!!



작품 개요



중국 제3세대 소설가위화(余華)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가 나왔다. 중문학자 최용만씨의 번역으로 출간된 《허삼관 매혈기》는 《살아간다는 것(活着)》이후 4년 만에 발표된 위화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출간 직후부터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위화를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목록에 올려놓은 문제작으로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에 소개돼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은 특별히 잘나지도, 그렇다고 선량하지도 않은 허삼관이라는 한 가난한 노동자가 삶의 기본 양식(樣式)과 양식(良識)을 지키고 양식(糧食)을 구하기 위해 아홉 차례에 걸쳐 피를 파는 사연을 기둥 줄거리로 한다. 작가는 서사 진행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교차 반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며 이 비극적인 여로(旅路)의 흐름을 원만하게 한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거센 물살을 배음(背音)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건 매혈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로 드러내면서 한층 정교하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간 의의



잃어버린 웃음의 복원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한 사내가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하는 비극적 연민의 이야기, 격정의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삶의 여정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겁게 다가들지 않는다. 소설 전반을 통해 눈물과 웃음을 교차 반복시키는 작가 위화의 치밀한 서사 전략이 성공적으로 녹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연민과 격정을 자아내는 비극적 삶의 내용을 희극적인 말놀음으로 버무리는 구조는 허 삼관의 피의 역정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윤택하게 한다. 또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삶의 극한적 인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의 웃음이기에 그 희비극적 웃음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고 더욱 값지다. 또 그것은 삶의 실재로부터 유리된 채 가상의 몽중보행으로 치닫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형에서 볼 때는 잃어버린 웃음의 일종이다. 어느덧 우리 삶의 양지에서는 사라진 듯 보이지만, 그래서 그늘에 한없이 가려진 웃음이지만, 그 그늘에 숨길 수 없는 희비극적 삶의 진실이 스며 있음을 우리가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 우찬체(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평등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



작가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바 있거니와 이 소설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희구했던 이념. 그러나 결국에는 피빛 이상으로 머물고 만 꿈.

《허삼관 매혈기》에서 작가가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 자리이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채기 어렵다. 작가 위화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 한 가운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내를 던져놓고 그가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따라 천천히,평등이라는 이상(理想)이 지닌 현실적 한계와 죽음으로서만 다다를 수 있는 꿈의 비극성을 이야기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성 밖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가정이 있고 처와 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오면 주눅들어 지내면서도 자기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만은 자신만만한 사람. 이 사람은 머리가 단순해서 잠을 잘 때 꿈은 꾸더라도 몽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이 사람의 이름이 허삼관일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평등을 추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늘그막의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눈썹과 좆털 사이의 불평등이었다. 그리하여 소설 마지막에서 그는자못 근엄하게푸념한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주제의식에 가위눌리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기술, 가히 압권이다.



동아시아적 서사의 현대적 변용



84년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발표하기 전까지 위화는 중국 3세대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중국 대륙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체현된 글쓰기 방식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꾀한다. 이 소설《허삼관 매혈기》는 동아시아적 서사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구체적 결과물이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숙련이란 작가로 하여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하는가 하면, 동시에 치명적인 어려움들을 은폐시키기도 한다.

나는 줄곧 스스로에게 오늘날의 방식으로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그로 인하여 현대적 서술 방식에 대 해 점차적으로 정통해짐에 따라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서술상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글쓰기가 수년간 지속되다가 어느 날 생생한 사실 속에서 마음이 움직여지는 느낌을 받고 나 서는, 갑자기 확신에 찼던 나의 서술 방식이 생생한 현실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 게 되었다. 바로 내가 가슴 속에 새겨 두었던 글쓰기 방침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점점 더 뜨겁게 사랑해 가는 것들을 생생하게 써낼 수 있을까? 이 문제로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 고는 장편 《허삼관 매혈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침내 오늘날 나의 이상을 글쓰기 속에서 실현시켰다. -〈중국어판 초판 서문〉중에서





작품 줄거리



1

성안의 생사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 허삼관. 그의 삼촌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피를 안 팔아본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다. 결혼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인데 피를 팔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삼관은 그 마을 사람인 근룡이와 방씨를 따라 피를 팔러 성안의 병원으로 간다. 도중에 허삼관은 피를 팔기 위한 법칙을 배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다. 피를 팔러 가는 날은 아침을 먹지 않고 몸 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시는데 피를 뽑기 전에는 절대로 오줌을 누지 않는다. 원하는 때에 피를 팔려면 그 결정권을 가진 병원 혈두와의 교분이 중요하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볶은돼지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신다. 피를 팔고 나와 함께 승리반점에 앉은 방씨는 힘이 없다는 허삼관에게 말한다.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지.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이네.” 일상적인 일은 살에서 나오는 힘으로 하지만 큰 힘은 피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 피를 팔고 받는 돈은 반 년 간의 중노동으로도 벌 수 없는 큰돈이라 결혼을 하거나 집을 짓는 것처럼 큰돈이 필요할 때는 피를 파는 것이다,



2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번 귀한 돈으로 장가를 가기로 한다.



3

허삼관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두 명이 있다. 하나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임분방이고 또 하나는 성안에서 제일 가는 멋쟁이이자 미인인 꽈배기 서시’ 허옥란이다. 허옥란은 하소용이라는 남자를 마음에 두고 아버지에게 보이기까지 했지만 피를 판 돈으로 유혹하며 적극적으로 청혼하는 허삼관과 결혼한다.



4

허옥란은 5년 동안 세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일락, 이락, 삼락이 그들이다.



5

허삼관이 결혼한 지 삼 년이 흘렀다. 일락이가 허삼관을 닮지 않고 하소용을 닮았다는 말이 거듭 허삼관의 귀에 전해지자,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소문의 진위를 다그치고 허옥란은 결혼한 후 하소용과 한 번의 관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6

화가 난 허삼관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



7

이 사실을 안 일락이는 어머니 허옥란에게 반항하지만 허삼관에게는 더욱 정성을 다한다. 한번은 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들과 벌인 싸움에 끼게 된 일락이가 힘이 더 센 방씨 큰아들의 머리를 돌로 찍는다.



8

머리를 크게 다친 방씨의 아들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방씨는 허삼관을 찾아와 병원비를 줄 것을 요구한다. 일락이가 하소용의 자식이라는 소문으로 자라대가리(중국에서 이 말은 최악의 욕으로 무능하고 바보같은 남자를 일컫는다)가 되어버린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방씨 아들의 병원비를 물어주는 자라대가리 노릇까지는 할 수 없다며 이 돈은 하소용이 물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9

병원비를 받으러 하소용을 찾아간 허옥란은 매만 맞고 빈손으로 울며 돌아온다. 일락이를 직접 보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허삼관은 가지 않겠다는 일락이를 야단치고 결국 일락이는 하소용을 찾아가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쫒겨난다.



10

병원비를 주지 않자 방씨는 허삼관의 살림을 실어가고 그 모습을 본 허삼관은 소리내어 운다.



11

방씨가 가져간 살림을 찾기 위해 허삼관은 10년만에 다시 피를 판다.



12

살림들은 다시 허삼관의 집으로 옮겨져 제자리를 찾는다.



13

방씨에게 준 돈이 피를 판 돈이라는 사실을 안 허옥란은 하소용을 찾아가 소란을 부린다.



14

임분방을 놔두고 허옥란과 결혼한 것이 후회스러웠던 허삼관은 임분방을 찾아가 정을 통한다.



15

임분방의 집에서 나온 허삼관은 다리를 다쳐 아픈 중에도 자신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고 들어준 임분방에게 선물을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판다.



16

허삼관이 임분방에게 보낸 선물을 들고 임분방의 남편이 허삼관의 집에 찾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놓고 허삼관이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다고 말한다.



17

그 일로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



18

1958년 인인공사, 대약진, 제강생산운동 등으로 토지와 모든 식량은 국가로 귀속되고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지만 곧 공급은 끊어지고 다시 각자가 자신의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게 된다.



19

수재와 가뭄이 겹쳐 식량은 귀해지고 허삼관네 식구들은 허옥란이 아껴 모아둔 곡식으로 죽을 끓여 마신다.



20

57일 동안 가족들이 죽만 먹은 것을 안 허삼관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게 해주려고 피를 판다. 이 사실을 안 허옥란은 피 판 돈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다.



21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허삼관은 피를 판 돈으로 하소용의 아들에게 국수를 사 먹일 수 없다며 일락이게는 군고구마를 사 먹으라고 50전을 준다. 혼자 군고구마를 먹고도 배가 고팠던 일락이는 식구들이 뜨거운 국수를 먹고 있을 장면을 상상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자기도 국수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식구들을 찾아간다.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고 식구들을 찾지 못한 일락이는 울며 집으로 돌아온다. 식구들은 잠이 들어 있었고 일락이는 허삼관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린다.그래, 난 당신 친아들이 아니야. 당신 역시 내 친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야.



22

다음날 새벽 일락이는 하소용의 집으로 가 하소용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친아버지이니 국수를 사 달라고 조르다 쫒겨난다. 일락이는 울며 집과는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걸어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국수 한 그릇을 사주고 친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애원한다. 이 소식을 들은 허삼관은 무심하다. 날은 어두워지고 걱정이 된 허삼관은 일락이를 찾아나서 이웃집 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일락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일락이를 업은 채 국수집으로 향한다.



23

2년이 지난 어느 날 하소용이 트럭에 치였다는 소식을 들은 허삼관은 고소해 한다.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병원에 있는 하소용이 일주일이 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자 하소용의 부인은 중의(中醫)이면서 점을 치는 진선생을 찾아간다. 그가 내린 처방은 아들이 집 굴뚝을 타고 앉아아버지, 가지 마세요. 돌아오세요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아들이 없는 하소용의 부인은 허옥란을 찾아와 일락에게 이 일을 하도록 해달라고 울며 애원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허삼관은 화를 내지만 이전의 감정은 묻어두고 사람 목숨부터 구하고 보자고 마음을 돌린다. 그가 일락이를 불러 앉혀놓고 한 말은 이것이었다. 일락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에게 뭘 해 줄 거란 기대 안 한다. …… 다만 내가 늙어 죽을 때, 그저 내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을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24

일락이는 허삼관의 말대로 하소용의 집 굴뚝을 타고 앉았지만 하소용의 혼을 부르는 곡을 하지 않는다. 하소용 부인의 애원과 어머니의 당부에도 일락이는 허삼관만이 자신의 아버지이니 곡을 할 이유가 없다며 막무가내이다. 불려 온 허삼관이 일락아, 착한 내 아들아, 그냥 소리 몇 번 지르렴. 소리 지르면 내 바로 올라가 널 데려오마.라고 말하자 일락은 곡을 하고 허삼관은 지붕에 올라가 일락이를 업고 내려와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결연히 밝힌 후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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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문화대혁명의 물결이 허삼관이 사는 성안에도 밀어닥친다. 도처에 가지가지 대자보가 붙고 만인비판투쟁대회가 열린다. 그 중 허옥란이 화냥년이며 기녀라는 내용도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끌려갔던 허옥란은 왼편 머리카락이 빡빡 밀린 채로 돌아오고 며칠 간격으로 각종 비판대회에 끌려 다닌다. 나중에는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가슴에 기녀 허옥란이라고 적힌 나무판자를 걸고 걸상 위에 서 있게 된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해가 뜨면 다시 거리로 나가는 날이 계속된다.

시간이 지나 모주석의 말에 따라 허삼관의 집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세월이 좀 흐른 뒤 지식 청년들은 농촌으로 가서 빈농과 하층 중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모주석의 말에 따라 일락이와 이락이는 농촌 생산대로 편입되고 가정에 한 사람은 남겨야 한다는 모주석의 말에 따라 삼락이는 성안 공장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26

몇 년이 흐르고 난 어느 날, 옛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누렇게 뜬 일락이가 돌아왔다. 열흘간을 누워서 보내고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일락이에게 허삼관 부부는 시골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집에 오래 있으면 게으름을 피운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집 근처로 배치받기도 어려워질테니 고생이 되더라도 참으라는 뜻이었다. 힘없이 떠나는 일락이를 배웅하러 선착장으로 향하던 중 허삼관은 피를 팔아 그 돈을 일락이의 손에 쥐어주며 이락이와 함께 피곤해서 입맛이 없을 때 맛난 것을 사먹고 생산대장에게 명절 때 선물 사는데 쓰라고 한다. 일락이가 떠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허삼관의 집에 찾아온 이락이네 부대의 대장은 저녁을 먹으러 다시 들르겠다고 말한다. 음식 차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허삼관은 한 번 피를 판 뒤에는 적어도 석 달이 지나야 다시 피를 팔 수 있다는 규정을 어겨가며 피를 판다. 병원에서 함께 피를 판 근룡이가 갑자기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허삼관은 자기도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과 피를 판 후의 증상 때문에 심한 피로를 느낀다. 저녁을 먹으러 온 이락이네 대장은 허삼관에게 술을 함께 마실 것을 강권하고 그 술을 받아 마신 허삼관은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몸을 떤다. 그러나 이락이네 대장은 술을 계속 권하고 허삼관은 이락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잔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 술을 마신다. 다음날 병원으로 간 허삼관은 근룡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벽돌 위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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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돌아온 일락이는 점점 쇠약해지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즈음 형을 찾아온 이락이는 형의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집으로 가기 위해 형을 업고 겨울 바람 속을 한 시간 동안 걸어 선창가로 간다.

이락이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온 일락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니 간염이 위중하여 상해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삼락이가 가진 돈을 모두 털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 일락이와 허옥란은 상해로 떠난다. 허삼관은 턱없이 모자라는 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판다.



28

허삼관은 상해에 가는 길에 임포, 백리, 송림, 황점, 칠리보, 장녕에서 피를 팔 예정이었다. 임포에서 피를 팔고 다시 백리에서 피를 판 허삼관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류한 허삼관은 사람들의 등에 업혀 여관으로 온다. 그렇게 계속 피를 팔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말

에 허관은 말한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저야 내일 모레면 50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지요.…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지……. 나흘 후 허삼관은 송림에 도착했다.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몸은 바싹 말라 사지에 힘이 없는데다,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멍하여 귓가에서 웽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송림병원에서 피를 판 허삼관은 쓰러진다. 혈압이 60에 40밖에 되지 않자 의사는 수혈을 지시했고 허삼관은 자신이 판 피의 두 배를 수혈받아야 했다. 병원을 나와 헤아려보니 피를 세 번 팔아 번 돈은 한 번 판 돈밖에 되지 않았다. 허삼관은 상해로 갈 배삵을 아끼려고 화물선을 얻어 타고 황점에 도착해 배 주인인 래희 형제와 병원에서 피를 판다. 그들과 헤어져 상해의 병원을 찾은 허삼관은 일락이의 침대가 빈 것을 보고 일락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울었으나 일락이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29

세월이 흘러 허삼관의 나이 이미 예순이었다. 세 아들은 모두 결혼했고 이제는 급전(急錢)이 필요할 일도 없게 됐다. 길을 걷던 허삼관은 예전 피를 팔고 먹던 돼지간볶음 한 접시가 간절해졌다. 일락의 병 때문에 피를 판 지 11년만에 허삼관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했다. 돼지간 한 접시. 그러나 병원에서는 늙은 노인의 피는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수 더 떠서 가구칠하는 돼지 피를 사는 사람에게나 가보라는 모욕적인 소리까지 들은 허삼관은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 판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며 거리를 걷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락이 삼형제와 허옥란은 허삼관을 찾아오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책한다. 허옥란은 그 동안 허삼관이 피를 팔아 세 아들을 키운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세 아들을 나무라고는 허삼관을 데리고 승리반점으로 간다.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을 앞에 둔 허삼관. 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피어난다.





작품에 쏟아진 찬사들



♠ 한없는 고난 앞에 드러나는 인간의 존엄, 고독과 동정심…… 이 소설은 한 편의 절묘하기 그지없는, 표면적 단순함과 간결함이 내면의 심원함과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프랑스 〈LIRE〉98년 1월호



♠ 여기서 우리는 유일무이한, 결코 손색없는 탁월한 상상력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 〈REGARD〉98년 2월호



♠ 위화의 서술은 맑고 투명하여 우리의 책읽기를 즐겁게 한다.

-프랑스 〈INDICATION〉 98년 4월호



♠ 이 작품은 《살아간다는 것》의 작가 위화의 또 한 편의 걸작이다 변두리 보통 사람의 만화경같은 삶을 살아숨쉬는 필치로 묘사하며, 고통에 찬 생활 속에서도 잃지 않는 용기와 믿음을 노래했다.

-프랑스 〈LE MOND〉98년 2월 13일



♠ 확실히 위화는 그들의 특수한 시대, 극한의 생존상태하에서도 살아있는 휴머니즘을 냉정한 필치로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이다.

-벨기에 〈VERS LAVENIR〉97년 12월 10일자



♠ 한 편의 우화, 특정지역의 한 인간의 경험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의의를 반영한 우화.

-벨기에 〈DEFIS SUD〉98년 5월호





독일어판 서문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에 관해서 아직 나는 아무 이야기도 써본 적이 없었다. 내게 무척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지만 그의 얼굴만은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입에 꼬나물고 있던 궐련이라든지 늘상 걸치고 다니던, 꼬장꼬장 때에 절은 흰색 저고리까지 분명히 떠오르는데도 말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라면 내 유년의 기억만큼이나 생생한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어느 혈두(혈액매매 담당자)의 생애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기억의 파편들이 끊임없이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건네오곤 하였다.

아버지로부터 그가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전화선 저쪽에서 들려오는, 은퇴한 외과의사 아버지의 목소리가 새삼 내 기억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얘야 생각이 날지 모르겠구나, 언젠가 촌사람들을 떼지어서 시끌벅쩍하게 이끌고 피를 팔러 다니던 그 혈두 말이다. 예, 물론 기억하고 말고요, 아버지.

그가 어쩌면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이혈두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성이 이씨였는지 어쩐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진짜 성씨를 잊어버리고 만 모양이다.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의 성씨란 많고 많은 중국의 중국인의 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일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인 것 같다. 한사람의 독특한 개성이나 심성이 사실은 무수한 사람들에게 은밀한 형태로 잠재하여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파우스트 박사가 고뇌에 휩싸이는 장면이 중국의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앞에 가로놓인 선택의 기로를 떠올리게 하므로써 그에 공감케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그가 차지하는 지위래야 보통의 간호사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그였지만, 그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종의 권위를 세워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이 오묘한 권력의 이치에 정통해갔고, 가난 때문에 혹은 또 다른 이유로 피를 팔러 온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그의 모습이 구세주 만큼이나 권위롭게 비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은 병원의 수혈용혈액 보유량이 풍족하던 시절이었고, 처음부터 그는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할 줄을 알았다. 피를 팔려고 먼 길을 오는 사람들은 오는 도중에 벌써 자신의 피를 팔 수 있을 지에 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그는 이 혈액원매자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법을, 그것도 이들 스스로 마음속으로부터 그를 존경하게 하는 방법을 창안해 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순박한 사람들에게 선물의 의미를 깨닫게 만들었다. 한 일(一)자도 모르는 이 대다수의 무식한 시골 사람들도 발이 넓어야 하고 안면을 서로 잘 터놔야 한다는 점과 선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써의 일종의 언어, 특히 자신의 희생과 손실을 전제로 하는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사이에서 선물이란 최고의 사랑과 찬사, 그리고 존경을 표시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런식으로 그는 이들에게 집을 나서기 전에 채소 두어 포기나 토마토 몇 개, 계란 몇 개 쯤은 반드시 챙기게끔 만들었다. 빈 손으로 온다는 것은 할 말을 집에 떼놓고 오는 것과 같아서 이 혈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이러한 자신의 왕국을 경영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수십 년 동안 풍성하던 병원의 혈액저장고가 비어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병원의 혈액담당자들이 앞다투어 혈액원매자들을 찾아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다른 많은 혈두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에 손쉽게 굴복할 혈두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갈고 닦아온 자신의 교활함과 욕심, 원대한 안목과 동정심 등을 한데 녹여 그 어떤 어려움도 침착하게 타개해 나갈 줄을 알고 있었다. 먼저 그가 알아낸 사실은 혈액판매가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었는데 그에게 그런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나의 부친이었다. 그는 짧은 시간 내에 천 명에 가까운 혈액원매자들을 조직하여, 절강성에서 강소성에 걸친 수십 개의 현들을 넘나들면서 멀게는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까지 혈액구매수가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이들을 이끌고 다녔던 것이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는 보다 많은 수입이 돌아갔으며 그런 만큼 그의 돈지갑 역시 공기가 잔뜩 주입된 가죽공 모양 점점 더 배를 불려갔다.

이 길고 지루한 혼란스러웠을 여정에서, 평소 산만하기 이를데 없으며 서로 간의 면식도 없었을 급조된 오합지졸같은 무리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었는지에 관해 나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 무리들을 스스로 터득한 군대식 체제로 편성하고 군대식 규율까지 적용했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는 아마도 이 어중이 떠중이 같은 무리들 가운데서 수십 명 정도를 선발해서 그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부여했을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각자의 재주를 십분 발휘하게 하여 때로는 위협과 욕설로 때로는 격려와 사탕발림으로 천 명에 가까운 대부대를 그를 대신하여 통솔하게 했을 것이고, 그 동안 그는 이들 수십 명에 대해서만 통제의 고삐를 쥐는, 그런 방식을 썼을 것이다.

새까맣게 거리를 메우고 지나가는 이들 천에 가까운 대오는 작전 중에 이동하는 군부대나 진지한 의식을 거행 중인 종교집단 같은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나는 이들 속에서 일어났음직한 숱한 이야기에 무척이나 관심이 끌렸었다. 사내들 사이에 걸핏하면 벌어지는 싸움질이나 여자들 사이의 수다, 그리고 몰래 눈이 맞은 남녀들, 물론 진심으로 서로 돕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는 등등의…… 어쨌든 이보다 더 잡다하고 천태만상을 한 무리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리라.

나는 줄곧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 이 매혈 행각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나를 발견하였고 그후 9개월이 지나서야 내가 쓴 바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허삼관 매혈기》를 써낸 것이다.

확실히 이 소설은 원래 쓰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은 저 혈두를 따르던 천 명에 가까운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고, 또 어쩌면 그는 그때 그 대규모의 집단매혈 행렬에 참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쓴 것은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 무수히 많은 다른 이야기들에 관해 나는 쓰지 못하고 있고, 또 앞으로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조차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작가가 된 이유인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임의로 다스릴 수 있는 권리란 내게 없는 것이고, 설사 내가 써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일단 다 쓰고난 그 순간 이미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그저 그들에 의해 선택되어 이야기를 써야하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사람의 작가라는 사실과 당신이 한 사람의 독자라는 사실은 전적인 우연이다. 독일어권에 살고 있는 당신이 이 책을 읽고난 후, 이 소설 속의 인물이 선택한 것과 당신의 마음 속 판단이 일치했다면 우리는 이미 문학의 아름다운 의미를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다.

북경, 98년 6월 27일





이탈리아어판 서문



나는 줄곧 표준 중국어로 글을 써왔다. 내 말은, 중국 남부지역 출신인 내가 북부지역의 언어로 글을 써왔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어가 플로렌스지방의 말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중국의 표준어도 하나의 지방어에 연원을 둔 것이다. 일개 지방어였던 플로렌스어가 단테의 저 위대한 서사시를 통해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공용어로 격상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중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전설처럼 아름답고, 또 놀랍고 부럽기까지 한 일이다. 단테의 천재성은 플로렌스 지방의 구어를 완벽한 서면어로 바꾸어, 그 우아한 선율과 자유분방한 격정, 심오한 사유의 힘이 글 속에 살아 숨쉬게 했다. 이미 고루해진 라틴어에 비해 《신곡》의 언어는 훨씬 더 생기발랄했을 것이며 형언하기 어려운 절절한 느낌마저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의 북방어는 확실히 권력의 득을 본 것이다. 권력의 경사는 한 지방의 언어를 통치자의 언어로, 그외 모든 지방의 언어를 비속한 사투리로 규정해 버렸다. 같은 방식으로 쓰여진 작품이 권력 중심지인 북방에서는 역사 기록으로 인정되어 정사 혹은 야사로 일컬어지는데 비해 남방에서는 그것이 민간에 전해오는 전설 쯤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투리의 세계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내가 이야기 한 편을 써보겠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아침저녁으로 써오던 이 친근한 말이 갑자기 오자(誤字)로 처리되는 사실 앞에서 나는 아득해졌다. 구어와 서면어 사이의 준엄한 차이로 인해 눈앞의 문이 갑자기 닫힌 듯 갈팡질팡하던 나의 사유는 이내 앞으로 나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작가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언어상의 타협을 할 줄 아는 재주가 있었던 덕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미 내 언어의 고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고향의 풍경과 성장의 경험들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고, 중국어가 가진 생명력에 힘입어 나는 남방의 리듬과 남방의 분위기를 이 북방의 언어 속에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 타향의 언어가 내 고향의 모습을 찬연히 되살아 나게 해주었다. 이것이 언어가 가진 미묘한 힘이며 언어가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5년 간의 글쓰기는 내 고향의 그 수많은 오자(誤字)들을 상실케 하고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 그것들을 정확하게 문장 속에 배치하는 방법들을 익히게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표준적인 중국어 가운데 여기저기서 골라낸 단어들을 배치하여 의미를 순통하게 하는 기술을 배워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내 처지는 “망국의 슬픔도 잊은채 노래나 불러제끼는 기생(商女不知亡國恨-당나라 두목(杜牧)의 시 泊秦淮에 나오는 구절로 ”저 기생은 나라 잃은 근심도 모르는 지, 강넌너 들려오는 후정화 노래소리만 요란하네“(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에서 인용한 것임.-역자주) 신세와 같은 것인 지도 모른다.

北京, 98년 4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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